그래서 동서양의 선각자들은 평생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살았다 해도 과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분들도 오랜 수행을 통해 인생의 일부를 깨우쳤을 뿐 완전한 깨달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각자들도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였는데 일반 범인(凡人)들이야 인생의 일부도 깨닫지 못한 채 살고 있겠지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항상 그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연관해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있지요. 석가나 공자와 함께 성인의 반열에 들어가는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는 서양철학에서 발상의 전환을 이룬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심오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 말은 누구나 쉽게 이야기 합니다.
'너, 주제 파악이나 잘해'라고 할 때, 그 뜻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겠지요. '너 자신을 알라'에서 '자신'은 그냥 자기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입니다. 즉, '인간의 내적 정신'을 가르치는데, 이에 대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은 다릅니다.
플라톤은 정신과 육체를 구분하여 육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정신의 독자성'을 옹호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에서 분리된 정신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두 철학자 각각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보다는, 그 이견은 그분들의 상이한 인생관과 세계관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혀내는 작업인데 이것은 삶의 태도가 결정합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삶,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 그 전체 스토리"에서 내가 누구인지가 가려지겠지요. 한남대 석좌교수
June 21, 2020 at 09:39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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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홍철의 아침단상 (919)] '나는 누구인가?' - 중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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