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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약자도 존중 받는 사회 - 미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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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와서 사귄 친구 부부가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 들어가서 대학에 자리를 잡은 후, 아이들 영어공부를 위해 잠시 미국에 들어온 분들이다. 미국에 머물고 싶었지만 한국사회에서 ‘대접받고’ 살고 싶어서 학위 받은 후 바로 들어갔다고 했다. 미국이라는 곳 살아보니 누가 대접해 주는 곳이 없는 사회라고 말했다.

그때 ‘대접 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마땅한 예로써 대함’이라는 뜻을 가진 이 낱말의 ‘마땅한 예’는 ‘지위나 나이, 친분 정도에 따라 합당한 예’를 갖추고 대한다는 것이다. 친분관계에 따라 예를 갖추고 서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지위나 나이에 따라’ ‘합당한 예’를 갖추고 ‘마땅히’ 대접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이미 불평등이 내포되어 있다.

삼강오륜 중 ‘장유유서’가 우주의 질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문화이지만 나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위이다. 한국은 직업의 종류나 수입에 따라 사회경제적인 등급이 있고 그에 따라 대접이 다른, 보이지 않는 신분제 사회이다. 그리고 그 지위에 따르는 호칭을 조직 내에서 뿐 아니라 사회 생활에서까지 연장해서 부른다. 그것이 서양문화와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처음 와서 교수들에게 친구처럼 이름을 서로 부르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그런데 그것이 ‘평등한’ 관계의 출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문화에서는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XX 씨’라고 부를 수가 없다. 이름을 부르면 될 텐데 그 직책에 ‘님’을 붙여서 불러야 한다. 그렇게 직위에 따른 ‘호칭’과 그에 마땅한 ‘대접’이 필요하니 평등한 관계가 어렵고 까딱 잘못하면 ‘위력’을 부리게 될 수도 있다.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하는 일체의 행위, 곧 위력을 이용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는 것은 그가 ‘강자'라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행동의 이면에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고민해 보는 편이다. 행위 자체를 가지고 내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한다. 한 사람이 무심코 내뱉는 말이나 행위 저면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태평양의 파도를 다 세는 것보다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신념보다는 태도, 특히 약자를 대하는 태도는 아주 중하게 여긴다. 우리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리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약자에게 위력을 행사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불명예스러운 일을 해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으면 그것은 괜찮은 것인가? 박원순 시장, 그동안 이룬 공 훌륭했고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그 유가족의 마음을 다치는 것, 생각만 해도 속상하다. 하지만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던 만큼 정확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진영논리에 갇혀서 계속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것 같아서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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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6, 2020 at 05:29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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