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에서 보리가 발효돼 맥주로… 고대 그리스선 와인 마시며 토론

혼밥은 개성일지 모르지만, 혼술은 궁상이다. 술자리에선 건배를 외치고 잔도 부딪쳐야 한다. 그런데 '함께'가 아니면 마시는 것조차 어색한 음주의 속성은 언제 어디서 시작된 걸까. 1만년 전 구석기시대엔 술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토기에 담긴 물속에서 보리가 발효되던 기원전 4000년쯤엔 술이 있었다. 술자리 모습이 어땠는지도 알 수 있다.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일대에서 출토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기의 토기엔 커다란 항아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빨대를 항아리에 꽂고 맥주를 마시는 그림이 새겨져 있다.
언론인이자 저술가인 저자 스텐디지는 이 책에서 '마시다'라는 동사가 창조한 문명의 현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저자는 인류 문명을 바꾼 6개 음료로 맥주·와인·증류주·커피·차·코카콜라를 꼽는다. 인간이 물 아닌 다른 음료를 마시게 된 것은 신석기 시대 토기가 발명되면서부터다. 토기에 담긴 곡물이 맥주로 탈바꿈했다. 사람을 취하게 하는 이 신기한 물은 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명백한 증거이자,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제사상에 올리는 공물이 됐다. 맥주는 고대사의 비밀을 들여다보는 창이기도 하다. 한때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에 노예가 동원됐다고 여겨졌지만, 맥주가 당시 급료로 지급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농한기 농민이나 도시 근로자가 피라미드를 쌓아올렸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메소포타미아에 맥주가 있었다면, 그리스엔 와인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가 맥주를 좋아하는 메소포타미아에 넌더리를 내며 그리스로 도망쳤다고 믿었을 정도다. 무엇보다도 와인은 진리를 캐는 수단이었다. 그들은 취한 상태에서 내뱉는 말 속에 진실이 들어 있다고 여겼다. 진리를 찾기 위해 토론하는 심포지엄 자리엔 반드시 포도주가 나왔다. 하지만 진리 탐구보다 취기를 사랑했던 이가 없었을 리 없다. 플라톤이 저서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를 '이상적인 음주자'라 칭송하며 했던 설명이 그 증거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와인을 사용했지만, 절제했기 때문에 와인으로부터 어떠한 악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7세기 유럽의 식탁에 등장한 커피는 음료문화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 아침 식탁엔 맥주와 와인이 올랐다. 몽롱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유럽인은 맑은 정신과 활기찬 느낌을 선사하는 모닝커피를 사랑하게 됐다. 식자층에선 오늘날 커피숍에 해당하는 커피하우스가 지식을 나누는 사교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의미에서 와이파이 팡팡 터지는 커피숍에 앉아 리포트를 쓰는 학생은 커피하우스 전통의 계승자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의 음료 이야기는 중국에서 만들어져 영국에서 사랑받은 차를 거쳐 코카콜라에 도착한다. 코카 잎과 콜라나무 열매 추출물을 섞은 코카콜라는 '미국 글로벌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음료'라는 정체성으로 온갖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됐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코카콜라의 범람이 프랑스의 도덕적 지평에 위태로운 상태를 초래했다'고 비난했고, 오스트리아 공산주의자들은 '유럽의 코카콜라 공장은 원자폭탄 제조공장을 겸한다'는 음모론을 퍼뜨렸다. 동유럽에선 서방의 자유를 상징하는 음료였다.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자 동베를린 시민들은 서베를린에 있는 코카콜라 공장에 달려가 상자째 이 음료를 사는 것으로 세상이 바뀐 것을 확인했다. 일상적 소재에서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캐내는 저자의 솜씨가 놀랍다.
July 25, 2020 at 03: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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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유럽에 커피 등장하자, 와인 마시던 아침이 사라졌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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