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초선 시절부터 재벌개혁에 남다른 결기를 보여줬다. 2005년 금산분리와 관련해 금융산업 구조개선법을 내 삼성을 포함한 재계와 각을 세웠다. 당시 정부가 또 다른 금산법 개정안을 내자 “정부가 삼성의 대변인이냐”며 비판했다. 19대 국회 때인 2012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되자 삼성 등 재계가 떨고 있다는 말이 시중에 돌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 2월 ‘불법이익 환수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은 특정재산범죄를 적용대상으로 했지만 사실상 삼성을 겨냥했다. 그래서 ‘이학수법’이라고도 불렸다. 그해 12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재벌개혁특별위원장을 맡았다. 20대 국회에서도 삼성생명공익재단 등 대기업 계열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법안을 계속 내놓았다. ‘재계 저승사자’ ‘삼성 저격수’로 불려 삼성이나 재벌과 관련한 이슈가 나올 때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입각한 박 장관은 국회의원 시절과는 사뭇 다른 언급을 하고 있다. 4월6일 취임 1주년 기자들과의 미팅에서 “삼성 스스로 많이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기부와 삼성의 관계는 상생과 연대를 유지하면서 대기업이 갖고 있는 오래된 노하우와 자본·기술을 신산업과 스타트업·중소기업에 연결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했다. 6월 초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중기부의 K유니콘 프로젝트에 대해 “제2의 삼성전자 같은 회사를 여러 개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보면 의원 시절 박 장관과 오버랩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을 거쳐 2011년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박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올해 4·15총선에서도 승리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도 초선 때부터 삼성 등 대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1호 법안으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럴 때마다 언론의 관심대상이다. 정치인으로서 존재감을 부각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법원·검찰 등에도 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달 9일 검찰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후 가진 라디오 인터뷰에서 “죽어 있던 불구속 재판 원칙이 돈 있고 힘 있고 백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느닷없이 되살아나는 이런 걸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달 1일에도 국회에서 시민단체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의혹과 관련해 ‘수사 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낸 데 대해 “엉터리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검찰 기소를 촉구했다. 그러면서 “법과 원칙이 아니라 힘 있고 돈 있고 백 있는 사람들 위해서 대한민국 사법체계가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같은 당 양향자 의원이 “어떤 정치인이라고 해서 검찰에 기소해라, 기소를 촉구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하자 “양 의원 개인의 의견”이라며 피해갔다. 평소 삼성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삼성이 아니라) 이재용에 대해 비판적”이라며 “삼성을 사랑한다”고 했다. 또 “삼성을 저격한 적이 없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면서 “삼성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했다. 삼성 저격수가 아니라 경영진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듯한데 정치인의 레토릭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재계 저승사자로 불리던 박 장관은 왜 입각한 후 삼성의 변화 노력을 얘기하고 제2의 삼성전자 육성을 강조할까. 산업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기업 현실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장관의 달라진 모습에 ‘비판적’ 의원은 어떤 생각을 할까.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July 08, 2020 at 01:07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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