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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 '대청부채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 IT조선

mmasihpagi.blogspot.com
입력 2020.09.05 06:00

올여름 휴가계획은 원래 대청도로 잡았습니다. 피서를 핑계 삼아 ‘대청부채’를 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막대한 경비, 예상되는 생고생,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의 이유로 결국 취소하고 말았지만, 마음만은 계속 대청도를 향해 펄럭였습니다.
대청부채
대청부채는 오후 3시 전후로 피는, ‘생물시계’를 지닌 꽃으로 잘 알려졌습니다. 사실 생물시계(biological clock)는 인간을 비롯해 많은 동식물이 지니고 있습니다. 대청부채가 특이한 이유는, 아침도 아니고 밤도 아닌 늦은 오후 시간대에 피므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햇빛 같은 외적 요인에 의한 반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오후 3시 개화’ 희귀식물 대청부채의 비밀](http://ecotopia.hani.co.kr/499227)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대청부채 개화 시간의 미스터리가 풀렸다고 하면서 중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해 밝혀놓은 기사였습니다. 논문 내용 외에 부가적으로 덧붙여진 내용에도 흥미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과연 정말로 그런지 추적해 보다가 실제와 다르다 싶은 것을 발견해 이 글을 씁니다.

일단 위 기사를 잘 읽어봐야 합니다. ‘린넨학회 생물학저널’(Bi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에 실렸다는 중국 베이징산림대(Beijing Forestry University, 북경임업대학)의 논문에 따르면 ‘대청부채는 중국 자생지에서 함께 자라는 유사종인 ‘범부채’와의 교잡을 피하기 위해 개화 시간을 달리하게 됐다’는 것이 그 기사의 주요 골자입니다. 범부채는 대청부채와 다른 속(屬)으로 다루었으나 최근에는 대청부채와 같은 ‘Iris속’으로 다룰 정도로 유사성이 많은 식물입니다. 두 종은 인공 교배가 가능한데도 자연 교배는 일어나지 않아 학자들이 신기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관찰 결과, 두 종은 일단 개화시간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범부채는 오전 7시 15분~8시 15분에 개화했다가 오후 18시~19시에 지고, 대청부채는 오후 13시 45분~16시 15분에 개화했다가 밤 22~23시에 졌다고 합니다. 중복되는 시간대(13시 45분~19시)가 존재하지만, 꿀벌의 활동을 조사해 보니 양쪽 꽃을 방문하는 시간대의 차이가 확실해서 꽃가루가 서로에게 옮겨지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두 식물의 꽃가루 공급량 조절과 꿀벌의 기억력이 장벽 구실을 한다’고 연구자들이 밝혔다면서 ‘교잡 가능성이 있는 오후 시간대에는 꽃가루가 고갈된다는 사실을 알고 꿀벌이 꽃을 찾지 않았다’고 적었습니다. 꽃가루받이 시간을 겹치지 않게 하는 시간적 격리를 통해 생식적 격리를 하더라는 결론입니다.

범부채의 꽃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꿀벌이 대청부채나 범부채를 방문하는 주요 목적이 꽃가루가 아니라 꿀에 있다는 점입니다. 꿀을 먹으러 왔다가 꽃가루를 얻을 순 있어도 꽃가루를 목적으로 오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꿀이라는 요건을 아예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도 좀 이상합니다. 식물은 절대 꿀을 괜히 만들지 않는데 말입니다.

또한 꽃가루는 생산량이나 생산시간을 식물이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꽃밥이 터져서 꽃가루가 나오게 되면 그 상태에서 점점 소진되는 것이지 개화해 있는 동안 식물이 스스로 꽃가루의 양을 많이 냈다 적게 냈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청부채나 범부채는 꽃가루의 양보다 액체인 꿀의 양의 조절을 통해 꿀벌의 방문 시간대를 달리하는 전략을 쓴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꽃밥에서 터져나온 꽃가루
위 기사에 또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국내의 모 박사님이 전해준 관찰 이야기라고 하면서 ‘무인센서 카메라로 촬영해 보니 꽃이 말려 있다 풀리는 과정을 매일 되풀이하면서 2~3회 피고 진 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적었습니다. 기존에 알려지기로 대청부채의 꽃은 하루 만에 시들어버린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대청부채와 범부채의 꽃은 질 때 나사처럼 비틀리며 오므라듭니다. 한번 오므라든 꽃 조직이 구겨진 상태에서 다림질 없이 다시 깨끗하게 펼쳐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고 한 번 벌어져 꽃밥의 꽃가루가 소진됐다면 꽃의 역할은 그걸로 끝인데, 구태여 빈 꽃밥을 재활용해 꽃을 열 필요가 뭐가 있을까 싶습니다. 전날 꽃가루받이가 되지 않고 오므라들었던 암술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말렸다 다시 펴지는 것이 혹시 어쩌다 한두 개의 꽃이 그러는 것이라면 그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므로 모든 대청부채의 꽃이 그런 것처럼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식재지의 대청부채를 두고두고 관찰해 봐도 한번 말렸던 꽃이 다시 펴지는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자꾸 대청도를 향하는 이유는, 혹시 자생지의 것은 다를까 봐서 그런 것입니다.

말린 꽃과 앞으로 필 꽃
대청부채에 대한 가장 큰 미스터리는 개화시간에 있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시간을 알고 피는 건지 정말 궁금합니다. 대청부채는 우리나라 자생지에서는 오후 3시 30분 전후로 개화하고, 내륙의 식재지에서는 대개 오후 3시 전후로 개화합니다. 30분이라는 시간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요? 대청부채의 개화는 햇빛, 기온, 습도 같은 것과는 관련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생물시계는 외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에는 외부 조건의 변화를 없앤 상태에서도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대청부채도 그런 것 같습니다. 쨍한 날이건 비가 오는 날이건 볕이 없어 흐린 날이건 관계없이 약속처럼 꽃봉오리를 열었습니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폭우가 계속 쏟아지던 날에 10분 정도 늦게 피기 시작한 것만 빼고 말입니다.
빗속에서도 약속처럼 오후 세 시 즈음이면 피어나는 대청부채의 꽃
꽃줄기를 잘라 물컵에 꽂아둔 실험에서도 그랬습니다. 빛이 별로 들지 않는 실내의 약간 어둑한 방 안에 놓아둔 절화 상태의 대청부채는 다음날 오후 3시는 아니었지만 오후 7시 30분경에 꽃봉오리를 벌었습니다. 진 건 오후 11시쯤이었습니다. 다음날을 기대했지만 한 번 말려 꽃은 그대로 시들어 떨어져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더 지난 다음날 오후 7시경에 새로운 꽃이 피어나 감동을 주었습니다. 시간을 딱딱 맞춰 피진 못했지만 물컵에 꽂아둔 절화임에도 새로운 꽃을 만들어 두 번이나 피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절화 상태에서 두 번째로 핀 꽃
대청부채 같은 붓꽃과 식물은 꽃 구조가 특이합니다. 꿀은 수술이 붙어 있는 암술대와 외화피 사이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꿀을 먹으러 온 곤충이 외화피와 암술대 사이로 머리를 집어넣을 때 머리나 등 쪽에 꽃가루가 묻게 됩니다.
대청부채의 꽃의 구조
대청부채에는 다양한 곤충이 방문합니다. 꽃의 구조상 나비 종류가 활동하기에도 나쁘지 않습니다. 체구가 작은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 같은 것은 긴 주둥이로 꿀만 쪽쪽 빨아먹고 갑니다. 그래서 나비 종류는 꽃가루받이에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구나 했는데, 큰줄흰나비 같은 것은 머리를 디밀고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는 긴 주둥이로 꿀만 먹는다
큰줄흰나비는 머리를 깊숙이 디밀기도 한다
꿀벌 외에 홍조배벌이나 나나니 같은 벌도 옵니다. 육식성으로 알려진 말벌도 순식간이기는 하나 대청부채 꽃을 범한 증거로 뒤통수에 노란 꽃가루를 묻히고 갑니다. 꽃가루받이가 잘 일어나려면 어리호박벌처럼 큰 체구의 곤충이 제격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이 힘 좋고 성질 급한 어리호박벌이나 호박벌 같은 녀석은 아직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에 가서 극성을 부리며 힘으로 열어젖히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적지 않은 수의 곤충이 꽃 피기 전부터 와서 계속 문을 두드리며 열어줄 것을 재촉합니다. 그게 다 꽃 아래쪽에 있는 꿀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미약하지만 인간의 후각으로도 감지할 수 있는 향기입니다.
홍조배벌
말벌의 방문은 매우 짧은 순간에 이뤄지지만 그래도 꽃가루를 묻힌다
덩치가 큰 어리호박벌도 뒤통수와 등에 노란 꽃가루를 묻힌다
호박벌 역시 꽃가루를 묻혀 나른다
그런데 몸집이 아주 작은 파리류의 행동을 보면 외화피의 경사진 부분을 핥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슬라이딩해서 미끄러져 들어가기 좋게 생긴 그 경사진 부분은 색깔도 약간 다릅니다. 거기에도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꿀이 있겠다 싶어 혀로 핥아보니 역시 단맛이 느껴졌습니다. 파리가 먼저 핥은 것을 제가 핥은 셈입니다. 파리의 몸에는 1,941,000가지 세균이 있고 65가지 병을 옮긴다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 사실을 혀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좀 더 깊은 안쪽을 맛보게 했습니다. 역시나 그곳이 외화피 경사면보다 다섯 배 이상 강한 단맛이 느껴진다고 ‘멍청한 혀’가 알려왔습니다.
뚱보기생파리가 외화피 안쪽을 핥는 모습
장소에 따라 꿀의 맛이 다르다
대청부채 근처에는 모기도 얼씬거립니다. 대청부채의 꿀을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대청부채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의 혈액을 채취하기 위해 몰려드는 것입니다. AB형이라고 말해줘도 못 믿겠다는 듯 계속해서 엉덩이를 찔러댑니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습니다. 피를 주고 얻은 헌혈증서 같은 사진 속에 대청부채만 잘 찍혀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도 생물시계일까? 며칠 동안은 모기 물린 자리가 오후 세 시만 되면 어김없이 가려워지더라는…….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동혁 칼럼니스트는 식물분야 재야 최고수로 꼽힌다.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일한다. ‘혁이삼촌’이라는 필명을 쓴다. 글에 쓴 사진도 그가 직접 찍었다. 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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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05, 2020 at 04: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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