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에게
-정두리 作
아침이면
세상에서 제일 힘 센
너랑 겨룬다
밀어낼수록
무겁다
마구 짜증이 난다
눈시울, 속눈썹까지
한편인 거 알아
나는 니들과
함께 할 수 없어
혼자 힘으로 널 이겨내고
오늘을 열어가야 하거든.
계간 ‘시와소금’ 2020년 여름호에서
사람이 살면서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그럼에도 게으르다는 핀잔을 자주 듣는 이유가 잠을 쫓아내지 못할 때 듣는 소리다. 정두리 시인의 동시 ‘눈꺼풀에게’는 바로 잠을 이겨내는 눈꺼풀의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다. 쉽지 않다. 하늘의 무게를 밀쳐내야 눈이 떠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중에 가장 먼저 자신의 졸리는 마음을 이겨내야 첫 발걸음을 뗀다. 잠에 든다는 것은 살아 있으되 숨 쉬는 기능만 움직일 뿐 신체적 움직임이 멈추어 있다는 것이다. 내 몸을 움직여야 살아 있는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잠을 밀어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밀어낼수록 / 무겁다 / 마구 짜증이 난다”이 말속에 졸음이 아니더라도 삶의 모든 시련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잠을 떨쳐낸다는 것은 결국 나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잠을 이겨내지 않으면 다른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세상에 잠든 것들이 무수히 많다. 그것을 잠에서 깨우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그 눈꺼풀을 벗겨내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눈이 사람의 신체에서 가장 민감하고 촉수가 예민하다고 한다. 앞을 본다는 일은 눈꺼풀이 눈을 보호하는 믿음만큼 나를 신뢰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눈꺼풀은 그런 신뢰의 문을 열게 해주는 신호가 아닐까 한다.
June 21, 2020 at 06:03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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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정두리 作 / 눈꺼풀에게 - 원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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